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이비드 리 (문단 편집) ==== [[뉴욕 닉스]] ==== 리는 [[2005년]] 드래프트 1라운드 마지막 픽인 30픽으로 [[뉴욕 닉스]]에 드래프트되었는데, 지명 당시엔 엄청난 야유를 들어먹었다. 사연인 즉, 당시 닉스엔 이미 리와 비슷한 신장의 언더사이즈 파워 포워드가 많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뉴욕이 고향인 피츠버그대의 유망주 크리스 태프트가 의외로 그때까지 지명되지 않고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래프트장의 뉴욕 팬들은 태프트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으나 정작 호명된 이름은 데이비드 리... 잠시 멘붕에 빠진 뉴욕팬들은 정신을 차리고 일제히 야유를 퍼부었다. 선수생활 초기에는 주로 벤치에서 출장하는 전형적인 허슬플레이어였다. 그러나 루키시즌부터 워크에틱을 인정받아 신인을 중용하지 않기로 유명한 [[래리 브라운]]감독의 눈도장을 받고 루키시즌 중후반부터 조금씩 중용되며 뉴욕팬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무엇보다 호평받았던 것은 좋은 운동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화려한 덩크를 비롯한 쇼맨십성 플레이를 철저히 지양하고 골밑에서 굳은 일을 도맡아했던 태도였다. 2년차는 벤치 멤버임에도 시즌평균 10득점 10리바운드 이상의 더블-더블을 기록하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 암흑기였던 뉴욕팬들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주었다. [[파일:attachment/데이비드 리/DavidLeeKnicks.jpg]] 2:2 플레이를 비롯한 공격에 눈을 뜨고 200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나서기 시작해 평균 득점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2010년에는 엘리트 [[빅맨]]의 지표인 20득점-10리바운드를 찍으며 라트렐 스프리웰과 앨런 휴스턴 이후 근 10년만에 뉴욕의 첫 올스타로 선발되기도 했다.[* [[앨런 아이버슨]]의 대타 출장.] 애석하게도 뉴욕은 암흑기였기 때문에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뛰는건 꿈도 못꿨지만. 드래프트에서 야유를 받았던 청년은 이제 [[데릭 지터|모든 뉴욕 시민들이 사랑하는 선수]]가 되어있었다. 다만 2010 오프시즌에 타 팀의 거물급 FA를 2명 이상 영입할 것을 공공연하게 밝혀왔던 뉴욕으로서는 이미 올스타급 [[포워드(농구)|포워드]]가 되어버린 리를 함께 잡을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아마레를 데려오고~~ 결국 리는 2010 오프시즌 때 사인 앤 트레이드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계약조건은 6년 $80M. 뉴욕 닉스의 2010년 플랜 때문에 이미 예전부터 선수 본인과 팬들 모두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기에 선수 본인도 담담하게 이적했고 뉴욕팬들로서도 타 선수가 뉴욕을 떠날 때와는 달리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으로 리를 떠나보내며 새 팀에서의 성공을 빌어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